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정답 없는 삶에서 나의 궤적을 그리는 법: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by 두부정식 2026. 8. 25.
반응형

오슬로의 스물아홉, 우리는 왜 사랑 앞에서 최악이 되는가

⚠️ 이 글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은 참고해 주세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원제 Verdens verste menneske, 2021)는 노르웨이 오슬로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지만,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제74회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안긴 이 작품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12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독특한 구조 자체가 이미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하나의 매끄러운 서사가 아니라, 제각기 다른 톤을 가진 짧은 장들의 연속이라는 것이죠.

주인공 율리에를 연기한 레나테 레인스베는 이 영화 이전까지 단역만 전전하다 배우를 그만두기로 결심한 다음 날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는 뒷이야기로도 유명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개인사가 '진로를 계속 바꾸며 방황하는 인물'을 연기하는 데 묘한 설득력을 더해줍니다. 오늘은 역사적 배경지식 없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 영화를, 인물들의 심리와 발달 과정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겠습니다.

1. 의대생에서 사진작가까지, 쿼터라이프 크라이시스의 얼굴

 영화 초반, 율리에는 의대에 진학했다가 "몸보다 마음을 치료하고 싶다"며 심리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다시 "예술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며 사진으로 방향을 튼 뒤, 학자금 대출로 카메라를 사고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지냅니다. 언뜻 보면 우유부단함의 극치처럼 보이지만, 심리학에서는 이런 20대, 30대의 방황을 '쿼터라이프 크라이시스(Quarter-life Crisis)'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안정된 정체성과 진짜 원하는 삶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혼란인 셈이죠.

 흥미로운 건 율리에가 단순히 게으르거나 무기력해서 방황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매 순간 누구보다 진지하게 몰입합니다. 문제는 그 몰입의 대상이 계속 바뀐다는 것뿐이죠.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의 이론을 빌리자면, 청년기의 핵심 과업은 '자아 정체성 대 역할 혼란'을 통과하는 것인데, 율리에는 아직 그 통과의례 한가운데 서 있는 인물입니다. 서른을 코앞에 둔 나이에도 여전히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는 설정은, 요즘 시대의 많은 관객들에게 낯설지 않은 그림일 겁니다.

2. 악셀과 에이빈드, 두 개의 거울

 율리에의 방황은 연애 상대를 통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15살 연상의 만화가 악셀은 이미 자기 세계와 커리어가 확고한 인물입니다.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아이를 갖자는 제안처럼, 율리에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삶의 다음 단계를 자꾸 앞당기려 합니다. 반면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바리스타 에이빈드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고 사회적 성취에 초연한, 악셀과는 정반대의 축을 이루는 인물입니다.

 에릭슨의 발달 단계 중 '친밀감 대 고립감' 개념을 여기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데, 율리에는 악셀 곁에서는 자신이 '조연'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하고, 에이빈드 곁에서는 자유롭지만 어딘가 방향을 잃은 듯한 인상을 줍니다. 두 사람 모두 율리에를 온전히 채워주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율리에 스스로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3. '더 나은 선택'이라는 환상이 만드는 불안

 영화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 중 하나는 율리에가 파티 도중 세상이 멈춘 듯한 착각에 빠져, 정지된 오슬로 거리를 혼자 뛰어 다니는 판타지 시퀀스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아름다운 연출을 넘어, 율리에가 얼마나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가능성을 갈망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심리를 '더 나은 대안에 대한 두려움(FOBO, Fear Of Better Options)'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지금의 선택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이 오히려 현재의 관계를 갉아먹는 현상이죠. 영화 제목처럼 사랑을 할 때 우리가 '최악'이 되는 순간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려는 악의에서가 아니라 이런 선택 앞의 불안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율리에가 악셀과 에이빈드 사이를 오가며 느끼는 감정도 결국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확신보다, '혹시 다른 삶이 있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에 더 가깝습니다.

4. 의존과 독립 사이, 죄책감이라는 그림자

 율리에가 악셀과 에이빈드 사이에서 흔들리는 동안 가장 자주 등장하는 감정은 죄책감입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기대고 싶은 의존의 욕구와, 그로 인해 자신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계속 충돌합니다. 이 줄다리기는 비단 연애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성인기로 접어드는 모든 사람이 부모, 친구,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한 번쯤 겪는 성장통이기도 합니다. 영화가 특별한 건 이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율리에의 표정과 침묵, 망설이는 걸음걸이로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5. 죽음 앞에서 완성되는 어른의 얼굴

 영화 후반, 악셀은 췌장암 진단을 받습니다. 그때까지 다소 산만하게 흘러가던 서사는 이 순간부터 완전히 다른 밀도를 갖기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건 이 병이 악셀 본인보다 오히려 율리에의 심리에 더 큰 파장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이미 헤어진 사이임에도 병상을 지키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관계가 꼭 지속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퀴블러 로스의 애도 단계 이론을 빌리자면,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을 거쳐 결국 수용에 이릅니다. 영화 속 악셀은 자신이 사랑했던 아날로그 시대(비디오테이프, 만화, LP)가 이미 저물었다는 사실을 병상에서 담담히 이야기하는데, 이는 곧 자기 삶에 대한 수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율리에에게는 이 상실이 오히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뒤늦은 각성으로 작용합니다. 에필로그에서 그녀가 결국 사진이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상실을 통과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안정감이랄까요.

 반면 에이빈드는 율리에와 헤어진 뒤 아이를 원하는 여성과 새로운 가정을 꾸립니다. 세 사람의 결말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 영화가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선명해집니다. 사랑의 성패보다 중요한 건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삶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마치며: 최악이 되어도 괜찮은 이유

 이 영화의 제목은 얼핏 자조적으로 들리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꽤 다정한 위로이기도 합니다. 사랑 앞에서 흔들리고, 선택을 미루고, 때로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최악의 순간들'은 사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통과하는 성장통이라는 것이죠. 역사적 사건도, 거대한 서사도 없이 오직 한 인물의 내면만으로 관객을 붙잡아두는 이 영화의 힘은, 결국 우리 모두가 율리에라는 사실에서 나옵니다. 진로를 몇 번이나 바꿔봤거나, 사랑 앞에서 확신 없이 흔들려본 적이 있다면, 이 영화는 유난히 크게 다가올 겁니다.

반응형

댓글